별의별
국민연금 개정안 통과 ‘더 내고 더 받기’의 의미와 세대 갈등의 심화
감다살
2025. 3. 2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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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20일, 국회 본회의에서 ‘더 내고 더 받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통과되며 연금 개혁의 새 장이 열렸다. 보험료율은 현재 월 소득의 9%에서 내년부터 8년간 매년 0.5%포인트씩 인상돼 2033년 13%에 도달한다. 소득대체율은 기존 계획(2028년까지 40%로 하락)에서 방향을 틀어 내년부터 43%로 상향 조정된다. 이로 인해 국민연금의 적자 전환 시점은 2041년에서 2048년으로 기금 고갈 시점은 2055년에서 2064년으로 각각 7년과 9년 늦춰졌다. 그러나 이 개혁은 단순히 숫자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세대 간 형평성과 미래 부담이라는 심오한 문제를 다시금 드러냈다.
개정안의 핵심과 긍정적 효과
이번 개정은 국민연금의 재정 안정성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설계됐다. 보험료율 인상은 기금 소진 속도를 늦추고 소득대체율 상향은 노후 소득 보장이라는 연금의 본질을 지키려는 조치다. 1988년 제도 도입 당시 ‘적게 내고 많이 받는’(보험료율 3%, 소득대체율 70%) 구조는 가입자를 끌어모으는 데 성공했지만 장기적으로 재정 불균형을 초래했다. 이후 1998년(9%, 60%)과 2007년(40%) 개혁으로 부담과 수령액을 조정했으나 여전히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기금 고갈이 불가피했다. 이번 조치는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청년층의 불만 “기성세대의 협잡”인가?
그러나 이번 개혁은 청년층의 강한 반발을 낳았다. 국회 투표 결과(찬성 193, 반대 40, 기권 44)에서 1980년대생 의원들이 여야 가릴 것 없이 반대표를 던진 것은 상징적이다.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은 이를 “개혁 합의가 아닌 기성세대의 협잡”이라 비판했고 여당 연금개혁특위 위원들의 총사퇴는 청년 세대의 불만을 대변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연금 구조상 가입 시점이 늦을수록 ‘더 내고 덜 받는’ 손해가 커지기 때문이다. 현재 20~30대는 높은 보험료를 내며 긴 가입 기간을 채우지만 정작 수령 시점에는 기금 고갈과 소득대체율 하락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세대 간 불균형의 뿌리
국민연금의 문제는 1988년 설계에서 비롯된다. 초기 저부담·고수령 구조는 당시 가입자(현 60대 이상)에게 유리했지만 이후 세대는 점점 불리해졌다. 소득대체율이 가입 기간 평균 소득을 기준으로 계산되다 보니 초기에 적은 보험료로 높은 연금을 받는 기성세대와 달리 청년층은 더 많은 부담을 지고도 적은 혜택을 받는다. 이는 단순한 정책 실패가 아니라 인구 구조 변화(고령화율 2025년 20% 돌파)와 기대수명 증가를 예측하지 못한 근본적 설계 오류다.
대안과 한계, 구조개혁의 필요성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해 국민연금을 세대별로 분리해 운영하자고 제안했다. 이는 과거 가입자와 미래 가입자의 부담·혜택 격차를 줄이는 근본적 해법이지만 현실적으로 실행은 어렵다. 대신 전문가들은 자동조정장치 도입을 대안으로 꼽는다. 이는 인구 구조, 기대수명, 경제 성장률에 따라 보험료와 연금액을 유연하게 조정하는 방식으로 스웨덴이나 독일에서 성공 사례로 주목받는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은 이런 구조적 개혁 없이 보험료와 대체율만 손질해 “미봉책”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심오한 고찰, 연금은 세대 간 약속
국민연금은 단순한 사회보험을 넘어 세대 간 약속이다. 현재 세대가 미래 세대를 위해 납부하고, 미래 세대가 다시 그 다음을 책임지는 구조다. 하지만 이 약속이 형평성을 잃으면 신뢰가 무너진다. 이번 개혁은 기금 고갈을 늦췄지만 청년층이 느끼는 불공정 문제를 해소하지 못했다. 연금 개혁이 성공하려면 재정 안정성뿐 아니라 세대 간 균형을 맞추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 내고 더 받기”라는 슬로건은 기성세대의 안도 속에 청년층의 좌절로만 남을 것이다.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재정 위기를 10년가량 유예했지만 청년층의 불만과 세대 갈등을 키운 반쪽짜리 개혁으로 평가된다. 진정한 개혁은 자동조정장치 같은 구조적 변화를 통해 부담과 혜택의 균형을 맞출 때 가능하다. 2064년 기금 고갈이라는 시한폭탄을 해체하려면 지금부터라도 세대 간 공감과 신뢰를 회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연금은 끝없는 개혁의 여정이며 그 중심엔 형평성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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